오랫동안 아파트에서의 삶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안양시에서 살았는데 아이가 박달동 학교로 진학하게 되며 뒷바라지도 할 겸 아파트를 팔고 학교 근처 빌라를 전세 얻어 이사했습니다. 그 빌라는 박달동 삼거리에서 안양고등학교 쪽으로 들어가다가 학교 못 미치는 곳, 차 한 대 드나들 정도의  골목으로 들어가서 또 꺾어 들어가 빌라 몇 동을 지나야 있는 집이었습니다.

당시 박달동은 낡은 빌라도 많이 있었지만 공터 곳곳에  빌라 건축으로 어수선했습니다. 밤에  신축 중인 어두 컴컴한 빈 건물 근처를 지나려면 으스스하며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골목을 돌아서 들어오면 빌라 서너동 정도를 지나서야 우리 빌라동이 있는데 앞선 빌라 서너동은  우리 빌라동보다 앞에 앉아 있고 우리 빌라동은 좀 뒤로 나 앉아서  골목으로 걸어 들어오다 보면 우리 빌라동 입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2001년일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잠도 안 오고 하여 강아지를 데리고  언니와 제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빌라동 마당 앞에 밭처럼 생긴 공터가 약간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강아지와 놀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심결에 골목으로 돌아 들어오는 입구 쪽을 바라보니 어느 남자가 부지런히 우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입구 쪽  전봇대에 가로등을 달아 놓아  다른 곳은 어두 컴컴하지만 그곳만은 대낮처럼  밝아 그 사람의 표정이나  생김새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거리는 있었지만 저와 눈은 마주쳤습니다. 

순간적 판단으로 저는 강아지를 얼른 안고 언니와 황급히 2층 우리 집으로 들어와 몸을 피했습니다.  안으로 들어온 즉시 그 사람에게 주목받지 않으려고 집안 불을 전부 끄고 창문으로 마당을 내려다보니 그 사람은 이미 우리 빌라 마당에 당도하여 조용히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앞선 빌라동들은 우리 빌라동 보다 앞에 앉았고  우리 집 빌라동은 뒤쪽에 지어져 골목에서 바라보면 앞선 빌라동에 가려져 우리 빌라동 출입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밖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찾아보며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두리번거리며 쥐 죽은 듯이 아직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조용하게 머물러 있었습니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다가 혹시 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걱정도 되고 섬뜩하고 무서워서 더 이상 내려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언제 우리 마당을 떠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시간은 새벽 2시 5분 정확히 기억하며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피해서 집으로 들어올 때는 범죄자라고 생각하여 피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한 밤중에 남자와 마주치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순간적 판단에서 황급히 집으로 올라온 것입니다. 그때 생각엔 늦게 귀가하는 동네 아저씨나 야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으로 생각하면서도 그냥 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냥 지나가지 않고 우리 집 마당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며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결코 평범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범죄자일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잔상(殘像)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합니다. 몸은 날씬한 편이고 날렵하며 키는 보통 남자 보다  약간 작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정남규 관련 보도를 보며 제가 안양시 박달동에서 본 그 사람이 정남규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몸을 피하지 않고 밖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찌 됐을까, 늘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날 일을 생각해 봅니다. 오금이 저리고 섬뜩하고 무섭습니다. 제가 밖에 그대로 있었다면 분명 우리는 그에게 해코지를 당했을 것이고 우리의 비명을 듣고 아이들이 쫓아 나오면 아이들까지 위험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위험해 보여 피했다기보다 그냥 단순한 생각에 2층 우리 집으로 얼른 들어갔던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어린 자식들에게 항상 조심하라고 일러둬야 합니다. 함부로 문 열어 주지 말고  감언이설로 꼬여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을 철저히 가르쳐 주세요. 그런 엄청 희귀한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가 없겠지 생각하지 말고 극소수의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늘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늦은 밤 밖에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가능하다면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 정 남 규 ]

* 출생 : 1969년 4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 
* 사망 : 2009년 11월 22일 (향년 40세) 경기도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에서 자살

* 죄명
연쇄살인
현주건조물방화치사
야간주거침입
특수강도
특수강도강간
상해
강간
절도

* 범행 기간 : 1989년 4월 ~ 2006년 4월 22일
* 범죄 피해자 : 사망 13명, 중상 20명
* 형량 : 사형


악마의 웃음 - 정남규가 웃고 있어요. 너무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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