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7월부터 1987년 4월까지 충청남도 공주에서 화성사건과 비슷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83년 7월 31일  충청남도 공주에 사는   50대 여성 A 씨가 밭일을 하러 나간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A 씨가 집을 나갈 이유가 없다며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A 씨는 예상과 달리  며칠 후 우성면 용봉리의 소룡골 계곡에서 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살해당했다고 하기엔 특이한 점이 없었고 멱(더울 때 개울물 등에 목욕하는 것)을 감은 흔적이 발견돼 심장마비에 의한 단순변사로 처리됐습니다. 당시는 여름에 멱을 감다 변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A 씨가 살해됐다고는 추정하지 못했습니다.

A 씨의 죽음이 잊혀 갈 즈음 약 7개월 후인 1984년 2월 21일 공주에서 또 부녀자 한 명이 사라졌습니다.  이번에도    50대의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이 여성은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간다며 집을 나선 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두 달 후인 4월 14일 이 여성 역시 내흥리의 한 야산에서 사망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번에도 타살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됐습니다.

이 사건도 잊혀져갈 즈음인  8월 19일  공주시에 사는    20대 여성 B 씨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에게 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이날 오후 2시경 산길을 지나는데 낯선 남자가 숲에서 뛰쳐나와서 이 여성에게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강간하려 하자 여성은 "사람 살려"라고 크게 소리쳤습니다.  B 씨가 격렬하게 저항하자 당황한 남자는 결국 포기하고 사라졌습니다.

1년 사이 같은 지역에서 살인 사건 2건, 강간미수 1건이 발생했지만 이후에도 살인 사건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후 1년이 지난 1985년 8월 23일 이번에는 공주의 한 계곡에서    20대 여자의 변사체가 발견됐습니다. 현장에서 범인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부패가 심해 사인규명조차 어려웠고 시신에서는 타살 정황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격자도 없는 데다 외지인인 탓에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1987년 1월 29일. 공주에 사는    47세 주부 C씨가 행방불명됐습니다. 절에 다녀오겠다던 C 씨가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절에 간다고 나간 후 연락이 끊겼다"며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은 평소 그녀가 다니는 길과 사찰 주변, 인근 야산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한달이 지난 2월 28일 오후 8시쯤 공주에 살인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교회에 다녀온다던      57세 여성 D 씨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 여성도 사흘 후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논 가운데 짚더미 속에서 마을 주민에 발견된 D 씨는 목에 찰과상이 있었고 이전의 사건과는 달리 성폭행과 타살 정황이 명확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잇따른 여성들의 죽음에 관할서는 발칵 뒤집혔고 경찰은 인근에 거주하는 동종 전과자, 우범자, 정신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피해자가 발생하기까지는 불과 한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해 4월 1일 공주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40대 여성 E씨가 사라졌습니다. 이 여성은 사건 당일 휴게소 간이수도가 고장 나 저수조를 둘러보러 간다며 산 위로 올라간 뒤 실종됐습니다.

다음 날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경찰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는데 E 씨가 아닌 뜻밖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지난 1월 말 실종됐던 C 씨였습니다. 하루 뒤에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E 씨의 시체가 추가로 발견됐습니다.

실종됐던 여성 2명이 발견되면서 경찰은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살인 전 강간을 하고, 범행 장소가 인적이 드문 야산이나 계곡에서 유기됐다는 점 등에서 범행 수법이 비슷하다는 분석을 내렸습니다. 또 범행이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것을 볼 때 범인이 인근 거주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습니다.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수사팀은 한 스님으로부터 결정적인 증언을 확보했습니다.  '키 165cm쯤 되는 30대 남자가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티고개 정상에서 내리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 남자는 항상 검정 옷을 입고 다녔는데, 그의 눈이 사팔뜨기였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라 공주군 반포면 일대에 대한 특별호구조사를 실시하면서 남자의 신원파악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공주시 옥룡동에 사는 범인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범인은 30살 독신남 강창구였다.

경찰은 형사대를 강씨의 집에 급파했습니다. 강 씨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잡으러 올 줄 알고 있었다"며 경찰의 체포에 순순히 응했고 변사로 처리된 범행까지 자백했습니다. 그는 1983년 7월부터 1987년 4월까지  ① ~ ⑦ 까지  6명을 살해하고, 1명은 강간미수의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강 씨는 경찰에서 "간질병이 있는 데다 사팔뜨기 눈을 갖고 있어 여자들이 나를 피했다. 이때마다 해코지를 하고 싶었고 욕정도 풀기 위해 여자가 생각나면 범행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살인·강도·강간·시체유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 씨는 사형이 확정된 후 1990년 4월 17일 흉악범 9명과 함께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사형에 처할 당시 그는 참회의 표시로 자신의 눈과 콩팥을 기증했습니다.

강창구는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고 몹시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로 바꿈)도 마치지 못한 강 씨는 형의 집에 얹혀살면서 시멘트 미장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강창구는 사팔뜨기인 데다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었고, 10대 때부터 간질까지 앓아왔다고 합니다.
강 씨의 주변에는 보듬어줄 사람도, 의지할 만한 사람도 없었고 항상 외톨이였고,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강 씨가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연쇄살인을 한 시기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시기와 비슷했습니다. 특히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범죄 수법이 매우 비슷해 2019년 9월 이춘재가 유력 용의자로 밝혀지기 전까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도 강 씨가 범인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고 합니다.

불우한 환경에 처했다고 살인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환경 탓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봅니다. 이 연쇄살인마를 사형시켜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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