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래전에 경기도 안양에서 살 적에 저의 아파트에서 겪은 일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저의 직장과 아이들 학교생활로 안양에서 오래도록 살게 돼서 그런지 거기에서 참  많을 일을 겪었습니다.  직장을 퇴직한 후로 지금은 오래전에 자리 잡고 살려고 사놓았던 집으로 이사를 와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로 이사 온 지도 꽤 오래됐는데 이곳에선  한 번도 위험한 일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운동 차 한 밤중 천변(川邊)에 나가서 산책하며 벤치에 앉았거나 평상에서 눕기도 하고 있었는데도  불안을 느낄만한 일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안양에서 살 때 휴가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의 집은 아파트 1층이었는데 언니는 안방에서 주무시고 계시고 저는 문간 작은방에서 누워서 쉬고 있었습니다.

벨이 눌리며 "이거 받어요"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우체부가 우편물을 가져온 것으로 생각하고  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묻지도 않고 뉘었던 몸을 얼른 일으켜 재빨리 거실로 나가 출입문을 열었습니다. 그 남자는 누런 모자를 쓰고 누런 조끼를 입고 누르스름한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몸은 말랐으며 작은 체구였습니다. 

그 남자는 무엇을 저에게 사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돈을 내어 놓으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행동과 말투가 너무나 포악하여 무슨 의도인지 조차 파악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고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그 남자에게 문 열어 준 것 밖에 없는데 열어 주자마자 아무 말도 아니한 저에게 보는 즉시 적대적으로 그렇게 공격해 왔습니다.

그 남자의 행동이 너무나 험악해서  무섭고 당황하여 저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겁에 질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굳어 버린 채 서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지갑을 가져다가 돈을 줘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궁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 남자는 점점 더 포악하게 나오며 수습할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지갑을 가지러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가는 쫒아 들어와서 해코지를 당 할 것 같고 어찌해야 될지 몰라서 그냥 굳은 채 서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안방에 계시던 언니가 심각성을 깨닫고 나와서  그 남자를 달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돈이 없으니 저희가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다 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오세요" 하고 말하니까 그 남자는 포악하던 언사(辭) 줄이며 한 동안 그냥 서 있었습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서 있던 그 남자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다행으로 생각하며 후유하고 문을 잠갔습니다. 한동안 마음을 진정하며 그 남자가 다시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보통 심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포악한 성정(性情)으로 볼 때 돈 몇 푼 줘서 될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만약에 그 당시 제가 그 남자에게 왜 남의 집에 와서그러느냐고 대들기라도 했으면 그 남자는 더욱 화를 돋워 저에게 해코지를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남자는 언니가 다른 방에서 나오므로 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제압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물러났을 수도 있고요.

언니와 저는 한 참을 걱정하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까지도 그 남자는 우리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사람들이 없는 아파트 뒤 잔디밭으로 돌아서 마당으로 나오며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아까 우리 집에 왔을 때에는 분명 누런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어둡고 짙은 남색(잉크색 : 우리가 보통 말하는 곤색)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변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예사가 아니로구나"라고 느끼며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변장한다는 것은 신분을 감춰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인물로 이런 경우는 범죄를 저지르고 감춰다니는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경찰에 신고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괜히 넘겨짚고 에먼 사람 잡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고  또한 신고 즉시  잡아 가두지 않는다면 우리 집을 훤히 알고 있는데 차후에 찾아와서 보복하면 뒷 감당을 어찌할 것인지 두렵기도 하고 너무나 복잡한 마음에 갈등하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를 못하게 됐습니다.

저희 아파트는 어린아이가 많은 동네로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었습니다.  아파트 앞마당에서도 아이들과 엄마들이 많이 모여 노는 북적북적한 동네였습니다.

저의 집이 그러한 1층에  있기 때문에 보는 눈이 많고 사람들이 빈번히 드나드는 입구였기  망정이지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 한적한 높은 층이었다면  그 남자가 저를 밀고 집안으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그 남자도 이러한 저희 집의 위치 사정을 감안하여  많은 생각을 하며 자제했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차편도 좋지 않은 먼 곳으로 발령받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차를 운전하여 새벽에 나가고 밤중에 집에 들어오니 많이 피곤한 생활이었습니다. 하루는 언니가 "어젯밤 너를 깨우려다가 너무 피곤한 것 같아서 안 깨웠다" 하고 말했습니다. 언니가 KBS '공개수배사건 25시'를 봤는데 우리 집에  왔던 그 남자가 방송에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절에서 지내고 있는데 사찰에  불공을 드리러 오는 신자들에게 못 되게 굴며 말썽을 일으키고 행패를 부리며 때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스님이 되겠다며 주지 스님께  스님 자격(승적?))을 달라고 하니 주지 스님께서 그 남자의 포악한 성정을 아시고  자격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이에 앙심을 품고 주지 스님을 흉기로 살해하고 도망친  지명수배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순간이나마 그 남자의 포악성을 보았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의 집이 1층 번잡하게 사람들이 드나드는 입구가 아니고  고층, 한적하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층이었다면 저를 밀고 집안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까지 누가 벨만 누르면 확인도 안하고 그냥 문을 열어줬습니다. 이제 그 일을 겪은 뒤로는  함부로 문을 열어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잊고 또 문을 함부로 열어 줄까 봐 문 앞에 "꼭 확인하고 문 열어 주기, 문 열어 주지 말기"란 글귀를 한동안 붙여 놨었습니다.

저는 이제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문을 열어 주지 않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꼭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세요. 특히 어린아이는 철저히 교육시켜야 합니다. 잠금장치는 잠그고 꼭 잠겼나 확인하고 추가로 설치한 안전 고리도 꼭 걸어두면 좋겠습니다.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문을 따고 들어간 것이 아니고 열려 있는 집에 들어가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반드시 안전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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