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마 정남규

오랫동안 아파트에서의 삶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집 사는 것은 나중에 결정하기로 하고 우선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당시 안양에서 살았는데 아이가 박달동 학교로 진학하게 되어 뒷바라지도 할 겸 근처 빌라를 전세 얻어 이사했습니다.

그 빌라는 박달동 삼거리에서 안양고 쪽으로 들어가다가 학교 못 미치는 곳, 차 한 대 드나들 정도의  골목으로 들어가서 또 꺾어 들어가 빌라 몇 동을 지나야 있는 집이었습니다.

아이 학교 뒷바라지를 하며 틈틈이 앞으로 살 집을 보러 다니는데 마음에 드는 단독주택이 있어 사 두기로 하였습니다.  단독주택에 살기로 결정하면서 집을 지켜주는 강아지를 들이기로 하고 보러  다니는데 차를 몰고 지나다니다 보니 길가 철장에 강아지 두 마리를 내놓은 곳이 있었습니다.

강아지가 참 귀엽게 생긴 것이 더위에 철장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진돗개 강아지로 30만 원에 한 마리를 사서 집으로 안고 왔습니다.  걸어서 은행에 데리고 가는데 애기라서 잘 걷지를 못하여 결국은 안고 갔다 왔습니다.

강아지를 들이니 너무 예쁘고 귀엽기도 하지만 나름 바빴습니다.  밥그릇, 물그릇, 목줄, 목욕용품등 준비물이 많고  시기마다 예방주사며 먹여야 할 약도 여러 개 있었습니다.  밥은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걱정도 많이 되어 사온 사장님한테 수시로 상담하며 대처했습니다. 어느 날 보니 강아지의 귀가 한쪽은 섰는데 한쪽은 반쯤 접혀 있어 잘 못된 줄 알고 사장님께 상담하니 점차 똑같아진다고 하였습니다.

강아지를 목욕시키면서 수건을 사람과 분리하여 써야 된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냥 강아지와  수건을 같이 사용했습니다. 강아지 목욕 시키면 수건 여러 장을 쓰는데  목욕할 때마다 강아지가 수건을 갈기갈기하며  걸레로 만들어 놓아 당시 우리 집 수건은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 어렸을 적에는 어머님께서 강아지를 시장에 가서 많이 사 오시고 아버님이 강아지를 무척 좋아하시고 예뻐하며 데리고 주무시곤 하여 강아지가 없는 날이 없었습니다.  강아지가 어미가 되어 새끼도 여러 번 낳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강아지를 들이는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 줘야 할지 강아지의 마음을 몰라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아이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점차 생활이 강아지 중심으로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박달동은 낡은 빌라도 많이 있었지만 공터 곳곳에  빌라 건축으로 어수선했습니다. 밤에  신축 중인 어두 컴컴한 빈 건물 근처를 지나려면 으스스하며 무섭기도 하였습니다. 

골목을 돌아서 들어오면 빌라 서너동 정도를 지나서야 우리 빌라동이 있었습니다. 앞선 빌라 서너동은  우리 빌라동보다 앞에 앉아 있고 우리 빌라동은 좀 뒤로 나 앉아서  골목으로 걸어 들어오다 보면 우리 빌라동 입구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2001년일 것 같습니다. 새벽에 잠도 안오고 하여 강아지를 데리고  언니와 제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빌라동 마당 앞에 밭처럼 생긴 공터가 약간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강아지와 놀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심결에 골목으로 돌아 들어 오는 입구를 바라보니 어느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부지런히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입구 쪽  전봇대에 가로등을 달아 놓아  다른 곳은 어두 컴컴하지만 그곳만은 대낮처럼  밝아 그 사람의 표정이나  생김새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눈이 유난히 번득였습니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 아니고 여하간 섬뜩할 정도로 번뜩이며 음산했습니다.  몸은 날렵하고 빨랐습니다. 거리는 있었지만 저와 눈은 마주쳤습니다. 순간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일찍이 고향 부모님 곁을 떠나 학교, 직장생활을 하며 홀로 생활하다 보니 조심하는 것이 몸에 배었습니다.

강아지를 얼른 안고 언니와 황급히 2층 우리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에게 주목 받지 않으려고 집안 불을 끄고 창문으로 마당을 내려다보니 그 사람은 이미 우리 집 마당에 와서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앞선 빌라동들은 우리 빌라동 보다 앞에 앉았고  우리 집 빌라동은 뒤쪽에 지어져서 골목에서 바라보면 앞선 빌라동에 가려져 우리 빌라동 출입문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집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이 그렇게 우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또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아직도 누군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찾고 있었습니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다가 혹시 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걱정도 되고 섬뜩하고 무서워서 더 이상 내려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언제 우리 마당을 떠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날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시간은 새벽 2시 5분 정확히 기억하며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잔상(殘像)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듯합니다. 두 눈이 유독 번뜩이며 광대뼈가 솟아 있었습니다.  몸은 마른 편이며 날렵하고 빨랐습니다.  키는 보통 남자 보다  작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정남규라고 생각하고 있고  정남규 관련 보도로 여러 번 사진을 접하며 제가 박달동에서 본 그 사람이 정남규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야근이나 일이 있어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동네 아저씨 정도로 생각하며 제가 그 당시 몸을 피하지 않고 밖에 그대로 있었다면 어찌 됐을까?  그 사람이 정남규던 아니던 늘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엄청 희귀한 일이 나에게 일어날 리가 없겠지 생각하지 말고 극소수의 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늘 조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늦은 밤 밖에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며 가능하다면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 정남규의 범행일지

연쇄살인, 살인미수, 특수강도강간, 방화죄. 13명 살해,  20명에게 중상을 입힘 

1. 2004년 1월 14일 밤 9시경 부천시 소사동에서 남자아이 두명을 춘덕산으로 유인하여  살해

2. 2004년 2월 6일 오후 7시 10분경  동대문구 이문동 골목길에서 24세 여성 살해

3. 2004년 2월 10일 오전 6시경 군포시 산본동에서 28세 여자 우유배달원 살해

4. 2004년 4월 22일 오전 3시경 구로구 고척2동에서 20세 여대생 따라가 집 앞에서 살해

5. 2004년 5월 9일 오전 2시경 보라매공원에서 귀가 중이던 24세 여성 살해

6. 2005년 5월 30일 오전 4시 30분경 군포시 산본동에서 41세 여자 우유배달원 살해

7. 2005년 10월 19일 오전 5시경 봉천10동 주택에 침입하여 26세 여성 살해

8. 2006년 1월 18일 오전 5시경 수유동 집에 침입하여 17세 둘째딸을 살해하고 불을 질러  21세 첫째 딸과 12세 막내아들까지 3명 살해

9. 2006년 3월 27일 오전 4시 50분경 봉천8동 주택에 침입하여 세 자매를 가격하여 그중 2명 살해

10. 위 9건의 살인 사건 외에 서울 서남부 및 안양시, 군포시, 광명시 등에서  마구 흉기를 휘둘러 사람을 죽이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다수 있음


* 정남규가 안양시에서 저지른 범행

1. 2004년 8월 4일 오전 3시경 안양시 만안구 안양6동 주택에 침입하여 안모 씨를 둔기로 내리쳐서  중상을 입힘

2. 2005년 4월 6일 오전 1시 30분경 안양시 만안구 안양5동 주택에 침입하여 강 씨(여자)와 한모 양을 둔기로 내리치고 불을 질러 중상을 입힘

안양시와 군포시 산본동, 광명시는 서로 지척(咫尺)이며 정남규는 이곳을 휘젓고 다녔습니다.  제가 빌라를 전세 얻어 살던 곳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입니다.

정남규는 잡히지 않았다면 살인행각을 그치지 않고 계속했을 것입니다.  경찰 취조 과정에서 정남규는 "나는 죽어서도 살인을 할 것 같다" 며 살해 당시를 되새겨 회상하며 만족스러워하는 빙그레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아!  세상에는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쓴 자도 있구나,  절감(感)했습니다. 

정남규는 1969년 4월 17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의왕시 포일동 서울구치소 옥중에서 2009년 11월 22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마 정남규

내가 박달동에서 새벽에 본 사람과 똑 같이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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