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분당 차량 질주 살인과  칼부림 사건의 원조격인 여의도 차량 질주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1년 10월 19일 화창한 토요일 오후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의도공원에 갑자기 나타난 차가 질주하며 시민들을 덮쳤습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쓰러졌습니다. 

이 일로 어린이 2명이 숨지고 시민 21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훔친 차량을 몰고 나와서 차량 질주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직장에서 해고되어  사회에 앙심을 품은 반사회적 성향의  20대 청년 김용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의도 공원은 1997년부터 공원화 사업을 조성하여 지금은 숲이 울창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광활한 광장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며 놀았고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가 많았습니다.

여의도광장에 차를 몰고 나타난 김용제는 시속 80km 속력으로 지그재그로 차를 몰아 시민을 덮쳤습니다. 김용제는 철제 자전거 공구함을 들이받은 뒤에야 멈추어 섰습니다. 김용제의 범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놀던 여중생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못 가 시민들에게 제압당했고 그렇게 그의 범죄는 막을 내렸습니다.

김용제는 당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죽인 사람에게 "미안한 생각 없다"며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거니까 할 수 없다"고 말했고,  "어차피 죽으려고 했으니까 그냥 무조건 밀어 붙였다"고 말했습니다.

김용제는 충북 옥천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어머니는 시각 장애가 있었습니다. 김용제 역시 선천적 약시를 가지고 있었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치료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된 김용제는 중국집 배달원, 멍텅구리 배 선원, 공장 직공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는데  시력 때문에 배달 나갔다 집을 못 찾기 일쑤였고 공장에서도 실수가 잦아 해고 당했다고 합니다. 

범행 후 경찰 조사에서 김용제는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양말공장에서 쫓겨난 뒤 부산의 신발공장에 다시 취직했으나 또 쫓겨나 일주일 전 서울로 돌아왔다"며 "이왕 죽을 바에야 세상에 복수하고 죽자는 생각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살인죄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제는 1991년 11월 29일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불우한 가정환경과 시력장애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많은 사람을 죽음의 동반자로 삼기 위해 눈을 감고 차를 몰아 아무런 원한, 감정이 없는 어린이 2명을 치어 숨지게 하는 등 극도의 인명 경시 의식을 지녀 재범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영원히 우리 사회에서 격리코자 이같이 선고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제기했지만 모두 기각됐고 1992년 8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5년 뒤인 1997년 12월 30일 다른 사형수 22명과 함께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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