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동물들이 있는 과천 대공원에 자주 갔었습니다. 여름휴가 내내 매일 가다시피 하고 매주 토요일 일요일에는 빠지지 않고 꼭 구경 갔습니다.

 입구에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코끼리 열차를 타고 가면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도착하여 내릴 때면 아쉬운 마음 간절했습니다. 리프트를 타고도 가 봤고 킹콩 버스도 몇 번 타 봤지만  코끼리 열차가 운치도 있고 훨씬 더 재미있어서 우리 가족은 갈 때마다 코끼리 열차만 타게 되었습니다.

물개를 좋아하여 물개 구경을 많이했고 맨드릴 원숭이를 많이 보았습니다. 맨드릴 원숭이가 인상 깊었던 것이 총천연색으로 털의 색깔이 다양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온몸에 예쁜 분홍색, 밝은 하늘색, 환한 노오란색등 고운 털이 나 있었습니다. 맨드릴은 지능이 상당히 높은 것 같았고 성격은 무서운 것 같았습니다.

호랑이 사(舍) 앞에서도 오랫동안 구경하곤 했는데  어느날 대공원 청소하시는 아저씨 한분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호랑이 사 앞을 지나서  점점 멀어지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연세가 꽤 드셨고 매우 왜소한 체구이셨습니다.

호랑이는 그분을 유심히 지켜 보았습니다. 관람객인 우리들을 보는 눈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노려 보았습니다.  그 호랑이는 그분을 가는 내내 끝까지 놓치치 않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호랑이의 눈빛은 사람을 대하는 경외심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갑자기 호랑이가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조카가 공군으로 5년간 국방의 의무를 다 하고 제대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는 조카에게  청(請)하여 언니와 저 그리고 제 어린아이들 2명을 데리고 대공원에 갔습니다. 차는 제 차를 타고 갔습니다.

동물원 입구에서 정면으로 마주보면 왼쪽으로 호수에 보를 쌓아 올린 언덕바지 비탈진 곳이 있습니다.  당시 그곳엔 잔디가 무성한 잔디밭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동물원에 입장하지 않고,  잔디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 여러분(젊은 여자분이라기보다 어린 아가씨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 같음)이 오셨는데 그 여자분들을 어떤 왜소한 남자가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날 날씨는 화창하고 적당히 따뜻했습니다.  거기 잔디밭에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이 모여 즐기고 있고 우리도 거기에서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놀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던 중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거의 없어지고 우리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가버리니 우리도 그곳에서 흥미를 잃고 다른 놀이를 찾아보던 중 주변을 둘러보니 잔디밭 아래에 거대한 하수구가 있고 그 아래로 얕은 계곡, 즉 개울처럼 양쪽으로 자갈이 깔려 있는 실개천이 있었습니다. 개천이라고 해 봐야  물은 한 방울도 없이 말라 있는 개울이었습니다. 

하수구는 족히 건물 3 ~ 4층 높이는 돼 보이며 일반적인 둥근 하수구가 아닌 건물처럼 네모나게 각으로 지어진 거대한 수로로 어디로 연결됐는지 끝도 없이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개울 사이드 자갈 밭에 서 있고 언니와 아이들은 하수구 입구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겨우 대여섯 살 정도 됐을 것 같습니다.

그  수로(水路)는 사각으로 되어 있고 잔디밭이 지붕이라고 할 수 있고  잔디밭에 반듯한 규격으로 상판처럼 건축되어 있어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아래 하수구 앞쪽이 훤히 보입니다.

언젠가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아까 젊은 여자분들의 사진을 찍어 주던 그 남자가 하수구 상판 위에서 아래 하수구에서 놀고 있는 언니와 아이들을 아주 유심히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수구 상판에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남자는 지지대를 잡고 몸을  앞으로 깊숙이 숙여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언니와 어린아이들만 있는지 아니면 곁에 혹시 건장한 남자라도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렇게 허리를 숙여 가며 깊이 들여다 보며 관찰했을 것 같습니다. 그 남자는 하수구 아래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난 다음 나름대로 언니와 아이들만 있다고 판단되어 쉬운 상대라고 결론 내렸을 것입니다.

하수구 상판 위에서 관찰할 그때까지만 해도 그 남자는 그 여성분들의 일행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 여성분들은 이미 그곳을 떠나고 혼자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일행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남자가 그냥 하수구에서 노는 사람들을 구경하나 보다 싶었습니다.

 잠시 후 그 남자는 전광석화(電光石火), 비호(飛虎) 처럼 나르듯이 하수구 아래 언니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순간 위험을 직감한 저는 아이들 이름을 고함쳐서 부르며  언니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 차 안에 조카가 있었지만 부르러 갈 시간에  일이 다 벌어질 것 같아 그냥 제가 죽을힘을 다하여 쫓아 갔습니다.

그 남자는 어찌나  날렵한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가볍고 빨랐습니다. 제가 쫒아 가더라도 언니와 제가 젊은 남자를 당해 낼 재간이 없을 것이고  흉기를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남자는몸이 빠르고 날렵한 데다가  잔디밭 언덕 위에서 하수구 아래쪽으로 내려 지르니 더욱 빨랐던 것 같습니다. 저도 뛰지만 울퉁불툴 한 자갈밭 평지를 뛰고 있으니 더욱 느렸고요.

그 남자는 개울가 자갈밭에 서 있는 저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저는 개울가 자갈밭 오른쪽에 서 있었고 그 남자는 왼쪽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하수구에 있는 아이들과 언니에게 너무 골몰하여 집중한 나머지 저의 존재를 알아 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는 보통보다 좀 더 큰 체격이지만 하수구에 있는 언니는 체격이 작은 편이고 조그만 아이들만 있으니 그 남자가 더욱 쉬운 상대로 봤을 것입니다.

언니와 아이들 있는 곳이, 그 남자와의 거리 보다 저와의 거리가 훨씬 더 가깝지만, 저 보다 훨씬 먼저 그 남자가 언니와 아이들에게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그땐 정말이지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그 남자와  언니하고 아이들의  거리가 6 ~ 8m  전후쯤 됐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하여 악을 쓰고 뛰었지만 한참 뒤처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남자가 하수구 상판 위에서 바라보던  그 곳에 조카가 어느새 와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날아가듯 순간적으로  왼쪽 나무 우거진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무 숲 속으로 들어간 후 그 남자는 전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조카가 저희들을 구했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언니에게 제가 부르던 소리가 들리더냐고 물어 봤습니다. 들리지는  않고 하수구에서 그냥  웡~ 웡~ 소리만 났다고 했습니다. 그때 왜 하필 하수구에 들어가서 놀았는지 참 철이 없는 짓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남자는 몸이 말랐고 체구가  작은 편입니다. 몸이 날렵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습니다. 광대뼈가 나왔고 피부는 보통의 피부색이며 오히려 약간 어두운 편이라고나 할까,  옷은 베이지 색인 것 같습니다. 그 남자의 나이는 20대 중 후반일 것 같습니다. 그때 시기가 1990년대 중 후반일 것 같습니다.

 

여기부터는 제가 공원산책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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